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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K-books

김혜순의 말(마음산책, 2023)

by hi_amie 2023. 12. 13.

 

 

 

고되다...... 내가 굳이 읽을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빙의'를 몰랐다면 과연 이해를 했을까 싶기도 하고....?
 

 
김혜순의 말
40년 넘는 시력으로 한국 현대시의 저변을 넓혀온 김혜순 시인의 인터뷰집 『김혜순의 말』이 출간되었다. 황인찬 시인이 인터뷰어로 참여하여 2022년 1월부터 7월까지 서면으로 주고받은 대화를 묶은 책이다. 시란 무엇이고 시인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뿐 아니라 삶과 예술에 대한 폭넓은 사유를 두 시인의 밀도 높은 언어로 담고 있다. 육체성과 타자성, 죽음과 고통, 가족과 시대의 억압, 여성으로서의 글쓰기 등 김혜순의 작품 세계에서 도드라지는 주제 의식들을 그의 생애와 겹쳐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 『김혜순의 말』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고통’이다. 이 인터뷰집에서 우리는 몸의 고통을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지, 그로 인해 어떻게 타자와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시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끝없이 시인 자신을 타자화해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캐나다 그리핀 시 문학상, 스웨덴 시카다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위치에 우뚝 선 김혜순 시인. 그의 강렬하고도 지성 어린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글 쓰는 삶의 충만함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는 시인의 것이면서 독자의 것입니다. 시인과 독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장소에서 은밀히 만납니다. 시인은 유령처럼 독자의 시선에서 다시 탄생합니다. 그 만남의 장소 없이 시인은 존재하지 않지요. _233쪽
저자
김혜순
출판
마음산책
출판일
2023.06.30


아마도 시는 대상 앞에서 대상이 죽기 전에 시인이 죽는 기록일 겁니다. 사물과의 작별, 세계와의 작별을 통해 잔혹한 죽음들과 맞서는, 선험적이면서 아찔하고 아득한 죽음을 구축하는 것이 시이지요. '나'의 죽음은 바로 너희들의 내부를 벗기고 벗겨서 들어갑니다. 그곳엔 벌거벗은 리듬 같은 것들이, 연기로 만든 뼈대 같은 것들이 겨우 남아 있지요. 바로 그 상태에 이르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는 '나'에게서 멀어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의 죽음은 바로 '너'가 되는 것이지요. (21-22)
 

'나'가 유령 화자로 말을 시작하자 제 죽음은 인칭을 특정할 수 없는 '너'가 되었어요. 저는 제가 죽은 후 '나'라는 단독 자아로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저의 죽음은 '나'를 '나 아닌 것'으로 만들 겁니다. '나'는 아마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지 않을 겁니다. '나'가 죽은 그곳에 '내'가 여럿이 된 그곳에 그 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24)
 

우리는 '사랑하다'를 통해 동물의 몸, 벌거벗은 몸, 자연의 몸이 되지 않습니까? 그처럼 '하다' 속에서 저는 타자 앞에서 동요하는 자이고, 구멍 난 자이며, 타자에게 매달려 안달하는 자입니다. 
'사랑하다'는 나를 타자로 만듭니다. 그래서 랭보처럼 "나는 타자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시하다'는 '사랑하다' 입니다. 나를 타자에게 내주지 못해 안달하는 말이 시입니다. (57)